"현직일 때는 이 일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한 번은 여성 청소년 사례관리(맞춤형 서비스 지원)를 맡은 적이 있었어요. 부모의 폭언과 방임을 겪은 친구였는데, 기숙학교에 다니던 아이를 만나기 위해 1시간 반 거리를 달려가고 매일 전화하다 보니 한 달 뒤에는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더라고요. 저로 인해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다고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을 다시 사회로 끄집어내고 일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그럴 때 느꼈죠."
대학원생 김희라(33)씨는 자신이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때의 보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본래 상경계 전공자였지만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다가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었다는 희라씨. 사회복지 학사 학위를 아예 새로 딴 뒤 2019년부터 현장에서 일했다. 그는 관심 있던 복지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일부 처우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직할 정도로 열의 넘치던 사회복지사였다. 그러나 그랬던 그가 결국 2022년 '탈사복'(사회복지사가 현장을 떠나 다른 직업을 찾는다는 뜻)했다. 박봉이나 열악한 처우만 문제가 아녔다. 3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년들 떠나는 이유? 돈 때문만 아냐"
사회복지사는 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어려움을 겪는 사회 구성원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한다. 희라씨 표현을 빌리자면 '어려움에 처한 이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일상을 더 살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탈사복'이라는 말이나 '사회복지사 2명이 결혼하면 기초생활수급자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보건복지부 권고)이 생겨서 임금이 중소기업 수준까지 올라온 게 얼마 안 됐죠. 물론 그것도 100% 준수하지 않아서 기관이나 지역별 차이가 크지만요."
희라씨는 사회복지사를 좌절시키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사 처우를 얘기할 때 보통 임금, 복리후생, 수당 문제를 자주 강조하고 저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청년들이 왜 현장에 오지 않으려 하는지, 또 들어왔다가도 금방 다른 업을 찾아 떠나는지 알려면 조직문화를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업계를 뜨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 중 하나는, 일터에서 대놓고 벌어진 '괴롭힘'을 목격했을 때다. "제가 일하던 기관 최고관리자가 과장급 직원에게, 다른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삿대질을 하며 고성을 지르더라고요. 등짝도 때리고요. 지켜보던 저까지 모욕감을 느꼈는데, 놀랍게도 동료 중 아무도 아무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사람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폭력적 행동을 일터에서 보니까, '저런 일이 내게도 벌어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해 2월 실시한 사회복지 종사자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59.1%가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했는데 이는 직장인 평균(33.4%)의 2배 가까운 수치다. 바뀌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경직적인 조직 문화, 시설 유형별 협회나 협의회 네트워크를 통해 종사자 평판이 쉽게 도는 '좁은 업계' 바닥, '편법 쪼개기 5인 미만 시설' 등 소규모 조직 형태 같은 것들이 '직장 내 갑질'이 만연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회복지사 통계연감(2021)에 따르면 2030세대는 전체 종사자의 40% 정도, 나머지 60%는 40·50·60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희라씨는 "기관들은 '돈만 더 주면 젊은 친구들이 오겠지'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경직된 문화·인사적체에 동료들 떠났다
특정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임금 하락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이직했을 때도 희라씨는 또다시 좌절을 겪어야 했다. 승급과 승진을 앞둔 연차였음에도, 근로계약서를 쓰는 첫 출근일에야 '근속 기간도 찼고 업무 평정도 좋지만 사정상 3급 승급은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사실 계약서를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는 '이 기관에서 이 일을 너무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알겠다고 했죠." 문제는 또 있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관이 협의도 없이, 본연의 사회복지사 업무 외 시설관리나 홍보 같은 가욋일을 일방통행식으로 배정했던 것이다. 희라씨는 항의했지만, 기관은 그를 도리어 탓했다. "이직 후 맡게 된 사례관리 업무가 이미 다른 곳의 2배 수준이었어요. 야근도 잦고 직원들이 주말 근무도 '자발적으로' 했죠. 힘들지만 제가 맡은 분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일을 겪으니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타인을 돕는 일이지만, 동시에 엄연한 노동인데도 이타심과 봉사심, 선의, 사명감을 최우선 가치이자 당연한 일처럼 요구하는 문화는 변해야 해요." 이 외에도 월급 일부를 반강제로 납부하게끔 하는 후원금 강요, 연례행사에서의 장기자랑 강요, 찾기 힘든 산업재해 처리, 얼마를 일하든지 '월 10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시간 외 수당,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 대한 인사적체 등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업계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희라씨 본인을 비롯해 주변에도 공기업, 사기업, 변호사, 노무사, 시민단체 등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난 전직 사회복지사들이 적잖다고 했다.
처우개선위에서 정작 현장 노동자 빠져
현재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박사 과정 중인 희라씨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 수요나 인력이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매일같이 나오는 것이 결국에 질 좋은 일자리를 못 만들었다는 뜻"이라고 직격했다. 2012년 처음 사회복지사법이 시행됐지만 이후 시설 유형이 분화되면서 "모든 종사자를 포용할 만한 처우 개선 체계가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돌봄에서의 공공 책임을 강화하고, 종사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당시 핵심 복지 정책으로 도입된 '사회서비스원' 모델 역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원 등으로 지난 정부에서 뿌리부터 흔들렸다. 사회복지사법 개정으로 적정 인건비, 처우개선 사항 등을 논의하기 위한 처우개선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산하에 생긴 것도 불과 2022년이다. 게다가 현재는 현장 종사자의 목소리를 대표할 노조 측 인사는 배제되어 있다. 윤석열 정권 당시에 복지부가 민주노총에서 위원 추천을 받고도, 결국 사회복지사 관련 협회 임원만 위원회에 넣은 탓이다. 희라씨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주로 노조에 많은데 이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거나,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이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는데 이러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정말 일할 사람이 없게 되면, 시민들이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상황에 직면할 거예요. 제가 자꾸 이 말을 반복해서 쓰게 되는데,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