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노동자인가? 사회복지사는 근로자인가? 아니면 노동자도 근로자도 아닌가?
매년 노동절을 맞이할 때마다 변하지 않은 문답을 반복하게 된다. 그나마 시대가 바뀐 까닭에 매우 자연스럽게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인식을 가진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용어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간과하거나, 노동자임은 인정하나 어떠한 부정적 의미를 연상하거나, 심지어는 사회복지사는 노동자도 근로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아직 헌법 및 법률상 공식 용어인 탓에 ‘근로’와 ‘근로자’는 그 목숨을 겨우 이어가는 중이다. 거의 모든 달력에 5월 1일은 근로자의날로 표기되니까 말이다. 최근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각 기관에 전송한 <근로자의 날 사회복지사 권익실현 권고문>을 보더라도 온통 근로자라는 표현뿐이다. 협회는 권고문에서 ‘... 사회복지사 역시 근로자로서 보호받아야 합니다...’라면서 유급휴일 준수와 권익향상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한다. 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왜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절을 노동절이라 말하지 못하는 걸까?
노동자와 근로자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 이러한 노동을 하는 사람, 즉 노동자는 결국 자신의 노동 없이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집단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처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관계로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과 교환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범주에 사회복지사는 매우 당연하게도 포함된다. 혹여 임금과 같은 대가를 받지 않는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노동자가 아닐 수 있겠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흔히 자원봉사자라 칭한다.
‘근로’는 ‘노동’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뜻을 가지는 말로서 일하는 행위만을 이야기하는 노동뿐만 아니라 근면해야 한다는 점까지 강조한다. 근면의 여부는 일을 시키는 사람, 즉 사용자가 판단한다. 일을 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일을 시키는 사람의 관점이 반영된 용어이다. 왠지 근로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근로자답게 일해야 하고 근로자 주제를 벗어나는 주장은 삼가야 할 것만 같다.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용어이다. 분배 대신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취한 지난 군사독재정권은 산업화의 역군으로 ‘노동자’ 대신 ‘근로자’를 택해 왔다. 노동의 양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노동의 과정에서 다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근로자는 그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매년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이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기념일이 아니다. 유튜브에 International Labor day라고 검색하면 세계 각 국의 5월 1일 노동절 행사와 집회 행진 영상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노동절 또는 메이데이의 시초는 130여 년 전인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 생존이 위협받는 낮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8시간 노동시간을 외치며 공장의 기계를 멈춘 날이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무력진압으로 노동자들을 살해했고, 이에 항의하며 노동자의 단결 정신을 기리기 위한 세계노동절이 비로소 1890년 5월 1일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노동절을 기념했다. 1923년 5월 1일이 최초이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조선노동연맹회의 노동절 기념 시위가 있었다고 역사는 말한다. 해방 직후 1946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최로 무려 20만명의 노동자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반공을 국시로 했던 이승만 정권은 어용노조였던 대한노총 결성일인 3월 10일로 노동절을 바꾸어 버렸다. 이후 군사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박정희는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다. 세계 노동절의 정신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러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차원의 노동절 투쟁이 매년 진행되면서 결국 94년 당시 문민정부는 원래의 날인 5월 1일로 근로자의 날을 개정하게 된다.
결국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온 세력이 노동을 존중하지 않은 역사적 과정이 근로자라는 용어와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야말로 적폐이고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들어 여러 지자체에서 조례 등에 사용되는 근로를 노동으로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실제로 개정했다. 언론사에서도 방송내용이나 신문기사에 노동을 되찾는 자체 노력을 하고 있다. 참고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다시 바꾸는 것은 관련 법률만 개정하면 되며 헌법과 법률 용어에서 노동자로 변경하려면 개헌이 되어야 규범체계 상 완벽한 변경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는 현 정부와 이번 총선에서 유례없는 전폭적 지지를 얻은 집권여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사회복지와 노동자
사회복지 현장은 어떠한가.
사회복지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가라고 일각에서 말한다. 이는 앞서 말한 노동자를 근로자로 대치시킨 정치적, 역사적 의도와 매우 유사한 의도를 품고 있다. 노동자와 전문가는 반대어가 될 수 없으며,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적 지향을 가진 노동자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라는 용어를 노동자와 대치시키는 과정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누가 왜 사회복지사를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는가? 누가 사회복지를 자선과 시혜, 봉사의 영역에 넣고 정치과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 해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라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범상 교수는 지적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회복지사를 두고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다며 비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들은 사회복지사의 본분이 클라이언트 권익 향상에 있지, 사회복지사 스스로의 권익 실현은 본분과 동떨어진 일로 보는 모양이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사회복지사의 낮은 처우와 불합리한 현실이 당연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인 사회복지사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임금구조 결정에도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마땅한 권리이자 책무에 해당하며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적 측면과도 연관된다.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노동조합을 통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있으며 단체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도 노조할 권리가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특히 산별노조 운동의 경험과 위력이 크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영세규모 사업장에 해당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오히려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는 노동조합이 생기면 곧 시설이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반쪽짜리 노동기본권
필자가 속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사회복지지부(사회복지노동조합)는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직접적인 임금 및 단체교섭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게도 사회복지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 대부분을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2020년 현재 노조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직접 교섭 요구에 대한 정부, 지자체의 반응 자체가 없다. 자신들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에 대한 관리 감독만 행할 뿐 직접적인 사용자로서의 권한과 책임은 수탁 법인 및 해당 시설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사업을 철저히 민간에 위탁한 결과이다.
이러한 민간 의존 태도는 결국 사회복지 시설의 비리를 키웠고 시설의 사유화나 비민주적이고 수직적인 의사결정 문화를 공고하게 만든 문제와도 깊숙이 맞닿아 있다. 지자체는 비리 문제가 터져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뒤늦게 행정처분을 내리는 방식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이슈가 된 불법 법인전입금 전출 문제도 사회복지계에 공공연하게 만연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고, 좀 큰 문제이다 싶으면 시설장이나 법인을 교체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노동조합과의 일 년 중 몇 번 되지 않는 정책 협의마저 중단했다.
노동3권을 가진 노동자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사용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 물론 현실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더라도 집단적 노사 관계의 규범으로 노사는 평평한 테이블을 마주보게 된다. 그러나 사회복지 노동자는 민간위탁 구조 탓으로 공공 부문의 간접고용 노동자 처지가 되어 버렸고, 그 결과 테이블을 마주할 사용자 자체가 모호하다. 우리의 사용자는 시설장인가, 법인 대표이사인가, 아니면 지자체장 또는 보건복지부 장관인가. 법인 및 시설의 장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노동계약을 맺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의 대다수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실제로 어렵게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단체교섭에 임하더라도 지자체 지침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짜 사용자라 할 수 있는 정부와 지자체는 팔짱만 끼고 있다. 사회복지사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고도 하고, 사용자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데 괜히 나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스스로 구하지 않는다면 대신 나서줄 누군가는 없다. 희생과 헌신의 영역으로 사회복지 노동을 희석한 결과이다.
이제 노동절을 맞아 사회복지사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선언하자. 또 반쪽만 주어진 노동기본권에 대하여 저항하자.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130년 전 메이데이의 중요한 정신은 바로 노동자의 단결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